박근혜대통령 휴가지
본격적인 휴가철에 접어듦에 따라 방송뉴스도 ‘휴가’를 선언할 것일까. KBS·MBC·SBS 지상파 3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를 일제히 보도한 반면,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진행됐다는 중요 문건 공개, 국정원 국정조사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뉴스 말미에 언급하는 수준으로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9일부터 여름 휴가에 들어갔다. 당초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피서지를 비밀에 부쳤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30일 페이스북에 휴가지에서의 모습을 공개했다. 지상파 3사는 일제히 개별 리포트를 할애해 이 소식을 전했다.
![]() |
||
▲ KBS·MBC·SBS 지상파 3사는 30일 메인뉴스에서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 소식을 보도했다. 특히 MBC(가운데)는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진에 블루톤의 필터를 입혀, 바다색은 더욱 푸르게, 박 대통령은 더욱 화사하게 보이게 포장했다. 편집하지 않은 사진을 사용한 SBS(맨아래)와 비교하면 사진 편집이 방식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화면 캡처) |
KBS <뉴스9>는 15번째 리포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남색 니트와 긴 치마 차림으로 백사장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도의 추억;. 어린 시절 비키니를 입고 부모님과 휴가를 즐겼던 그 바닷가입니다”라며 박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을 소개했다. KBS는 이달 2일, 28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각각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해 단신으로 보도한 바 있다.
<뉴스9>는 “특유의 올림머리를 풀고 가볍게 묶은 머리가 여유로워 보이고,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한가롭습니다”라며 박 대통령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고, 박 대통령이 머문 저도에 대해서도 “바다의 청와대라는 청해대가 있다”고 언급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같은 소식을 21번째 리포트에 배치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설명했고,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다’,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를 오게 되어 그리움이 몰려온다’는 박 대통령의 글 일부를 인용하기도 했다.
SBS <8뉴스> 역시 “취임 다섯 달 만에 격무에서 벗어나 간편한 복장으로 휴식을 취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 소식을 18번째 리포트로 보도했다.
KBS, 국정원 국정조사·4대강 문건 공개 ‘무보도’
대통령의 휴가를 ‘상세 보도’한 지상파 3사는 정작 중요 현안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거나 후반부에 배치하는 등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30일 <노컷뉴스>의 단독보도로 공개된 ‘4대강 문건’을 보도한 곳은 SBS <8뉴스> 뿐이었다. 그마저도 24번째로 스포츠 뉴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끝 꼭지였다. 이번 문건은 사원이 김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것으로, 당시 실세였던 박영준 전 국무차장이 ‘4대강 사업을 대운하로 추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문건은 4대강 사업은 대운하를 목표로 했다는 감사원의 발표 내용을 뒷받침해, 이명박 정부가 강력 추진해 온 4대강 사업의 민낯을 내보이는 중요 문건이었다.
![]() |
||
▲ 이명박 정권에서 실세 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국무차장이 '4대강 사업을 대운하로 추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포함된 문건이 30일 공개됐다. 하지만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중 이 소식을 다룬 곳은 SBS '8뉴스'뿐이었다. (화면 캡처) |
<8뉴스>는 “박영준 국무차장이 4대강 살리기 기획단과의 회의에서 1단계로 강의 최소 수심을 2.5m로 하는 국토부 안을 추진할 것을 지시한 뒤, 경제가 좋아지고 분위기가 성숙되면 최소 수심을 6m로 하는 대운하 방안을 추진하자고 언급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며 “감사원은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의 목적이 같다는 국토부 내부보고서도 확인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한,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중 30일 국정원 국정조사 건을 보도한 곳은 MBC <뉴스데스크> 하나였다. MBC <뉴스데스크>는 20번째 리포트를 통해 여야가 국정원 국정조사 증인채택 협상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름휴가 이후 국조 일정을 재개하자는 데 합의한 여야가, 국정조사 활동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것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은 없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데 데 그쳤다.
![]() |
||
▲ 30일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서 '국정원 국정조사' 건을 보도한 곳은 MBC '뉴스데스크' 하나였고, 그마저도 20번째 리포트로 후반부에 배치됐다. (화면 캡처) |
KBS <뉴스9>는 ‘세차장 고압 세척기 주의’, ‘전기차 대중화’, ‘자극 없는 항균 주방세제’ 뉴스를 개별 리포트로 보도하면서도 국정원 국조 및 4대강 문건에는 침묵을 지켰다. 낙동강의 녹조가 확산돼 식수원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을 12번째 리포트로 보도했으나, 낙동강의 녹조 문제와 4대강 사업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트위터에서도 각종 현안보다 박근혜 대통령 휴가 보도에 공을 들인 방송뉴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간 지속적으로 친정부적 뉴스를 선보인다는 지적이 이어졌던 KBS 뉴스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한 트위터리안(@mi*******)은 “청와대에겐 유독 친절한 KBS 뉴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고 박근혜 휴가 사진 옷차림, 헤어스타일까지 상세 보도 중”이라고 말했고, 다른 트위터리안(@me*********)은 “어제 KBS 박근혜 휴가 뉴스 보니까 북한 평양 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질타했다.
“국조 기간 중 새누리의 휴가가 논란이 되는 시점에 마침 박근혜도 휴가. 휴가지 비공개 입장을 깨고 페이스북에 사진 올리고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 뭔가 좀 공교롭다”(@ac*****), “스브스(SBS)가 그나마 나은 언론이라는 게 안타깝다. 오늘 스브스에서 박근혜 휴가 미화에 찬양방송 보고선 급 우울해짐”(@LA*******) 등의 반응도 있었다.
전 KBS 기자 출신인 <뉴스타파>의 최경영 기자도 페이스북을 통해 KBS 뉴스 보도를 꼬집었다. “세차 호스의 수압이 강하니 다칠 수 있어요. 이 청년이 손목에 빨강줄이 두 줄이나 갈 만큼 심하게 다쳤어요. 전기차가 앞으로 많이 팔릴 거란 하나마나한 보도. 주방 세제 관련 뉴스. 이게 KBS 몇몇 보도간부들이 선택한 오늘 시청자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뉴스’다”라며 “많은 시청자들이 이런 뉴스 보면서 창피함을 느낀다. 우롱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큰 코 다친다. 정말 에지간히 해라”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