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앞둔 추신수 아내로 살아간다는 건
FA 앞둔 추신수 아내로 살아간다는 건
![]() 남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아내 하원미 씨. 동료 선수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영국에서는 축구 스타의 아내를 왝스(WAGS·Wives And Girlfriends)로 부르며 상품화한다. 유명한 축구선수인 남자친구나 남편의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리는 여성들은 대중들에게 ‘그들만의 세상’에 사는 듯한 거리감을 선사한다. 화려한 옷과 명품백을 들고 가녀린 몸매를 드러내는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공인 아닌 공인이 돼 버린다.
그러나 이들한테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 유명한 스포츠 스타의 여자친구나 아내가 됐다고 해서 모든 일이 화려함으로만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이름처럼 ‘가을남자’로 대변되는 신시내티 레즈의 추신수. 그의 아내는 하원미 씨로 동갑내기이다. 두 사람이 마이너리그 시절에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이룬 후 1달러, 10달러에 생활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겪으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간 스토리는 많이 알려졌다. 지금은 737만 5000달러(약 80억 원)의 연봉을 받고 올시즌 이후 FA 대박을 예고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안고 있지만, 하원미 씨는 솔직히 이런 여유로움을 제대로 느낄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토끼같은 세 아이들 때문이다.
![]() 추신수를 존재하게 만드는 토끼 같은 세 아이들. 무빈, 건우, 소희가 신시내티 레즈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았다. |
추신수는 올시즌 ‘기러기 아빠’ 신세이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클리블랜드에서 함께 생활했다면 올해부터 가족들은 애리조나에서, 추신수는 신시내티에서 거주하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겨운 해후를 반복한다. 애리조나는 추신수가 몇 해 전에 구입해 놓은 집이 있다. 해마다 스프링캠프가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탓에 일찌감치 집을 마련해 놓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클리블랜드로 돌아가는 일상이었는데 올해는 가족들이 아예 애리조나에서 떠나지 않고, 아빠인 추신수만 신시내티에 집을 렌트해 살고 있는 중이다. 큰아들 무빈이 학교 문제가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생활이 이렇다 보니 육아는 전적으로 아내 하 씨의 몫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무빈이 뒷바라지는 물론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둘째 건우와 한창 엄마 손을 필요로 하는 막내 딸 소희까지 세 아이들을 쫓아다니기에 하루가 버거울 정도이다. 도우미를 구하려고 사방팔방 수소문했지만, 애리조나에서 한국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이고, 외국인도 잠깐의 베이비시터는 가능해도 아이들을 전담해서 돌봐주는 도우미를 구하기가 어렵다.
하 씨는 ‘슈퍼우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빈이를 학교 보내려면 세 아이를 모두 태우고 학교로 향하거나 가까운 마트 방문도 세 아이와 항상 함께 한다. 아이들이다보니 엄마의 소원대로 얌전히 카트에만 앉아 있기란 불가능한 일. 종종 아이들끼리 싸우고 울기도 하고, 장난을 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장보기는 꿈도 꾸지 못한다.
![]() 아빠를 따라 야구선수를 꿈꾸는 큰아들 무빈이, 막내 딸 소희와 하원미 씨의 모습.(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한 달에 한 번 정도 남편을 보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로 이동을 하는데, 신시내티에서 다른 도시로 향하려면 대부분 비행기를 두 번 정도는 갈아타야 한다. 세 아이들과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은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하원미 씨는 화려해 보이는 스포츠 스타의 아내와 거리가 멀었다. 경제적인 여유는 생겼지만 육아와 가사를 혼자 도맡는 바람에 그 부담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남편의 야구 경기를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하 씨는 “남편의 안타 한 개, 홈런 한 개가 모든 시름과 걱정을 덜어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또한 경기 결과가 좋았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남편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나름 고민을 해서 격려의 문자를 보내지만, 추신수의 타율이 하락세를 거듭했던 6,7월에는 이런 문자 또한 남편한테 부담으로 다가갔을지 모른다.
하 씨는 운동선수의 내조에 대해 “이렇게 떨어져 있다 보니 내조다운 내조를 잘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내 자리 잘 지키고, 아이들 잘 키우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힘들게 야구하는 남편한테는 최고의 내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요즘 하 씨는 지인들로부터 남편의 FA 이후 만나게 될 팀과 관련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즉, 추신수가 내년에 어느 팀에서 뛰었으면 좋겠느냐는 내용이다. 그는 남편과 같은 생각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도시이길 바란다. 남편과 가끔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누지만, 정답이 없는 대화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 바람만 나열하다 끝을 맺는 게 대부분이다.
![]() 올초,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당시 훈련장을 방문한 하원미 씨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 신시내티 더스티 베이커 감독.(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사람들은 남편의 몸값에 대해 관심이 크지만, 난 남편이 몸에 공을 맞고 출루할 때마다 소원을 빈다. ‘부디 큰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마무리하게끔 도와 달라’고. 지금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노력하고 애썼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난 남편이 성적이 안 좋다고 힘들어할 때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했으니까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얘기해준다. 물론 승부의 세계에 살고 있는 남편한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운동선수의 아내는 행복한 일보다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이 더 많다. 그러나 하 씨는 “그 모든 부분이 우리 가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서 하 씨는 “난 내년에 남편이 어느 정도의 몸값을 받고 팀을 만나게 될지가 궁금하기보다, 내년부터 우리 가족 모두 헤어지지 않고 한 도시에 정착해서 보금자리를 꾸리게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더 부풀어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7월, 하 씨는 아이들 방학을 맞아 남편이 살고 있는 신시내티를 방문했다. 당연히 아이들 셋도 함께 했다. 모처럼 온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추신수는 LA 원정을 위해 가족들과 잠시 이별을 해야만 했다. 하 씨는 남편이 집을 비운 동안 텅텅 비어있던 냉장고와 냉동실을 가득 채워 놨다. 혼자 지내는 추신수를 위해 카레라이스, 미역국,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모두 조리해서 일회용 팩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고, 추신수가 좋아하는 밑반찬들을 만들어 냉장고에 가지런히 나열해 놓았다. 나중에 신시내티로 돌아와 아내가 해놓은 냉장고 음식들을 보고 순간,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는 게 추신수의 전언이다.
추신수 하원미 부부는 아직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추신수에게 이와 관련해 질문할 때마다 “하긴 할 건데, 좀 더 의미있는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 중에 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하 씨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 굳이 형식적인 결혼식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아이들 다 키워놓은 후에 할 수 있다면 리마인드 웨딩마치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마음을 접는다.
수십 억, 수백 억 원의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해도 가족의 행복, 가정의 편안함이 없다면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적어도 추신수한테 아내 하원미 씨의 존재는 추신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보물’이나 다름없다.
벌써 3년 전의 사진이다. 시즌 종료 후 귀국한 동안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던 추신수. 가족들 모습만 봐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때만 해도 막내 딸 소희는 엄마 뱃속에 함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