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홍성찬을 도와줄 스폰서 없나요?
테니스, 홍성찬을 도와줄 스폰서 없나요?
![]()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에 위치한 홍성찬의 집에는 트로피와 상장, 메달 등이 가득했다. 홍성찬이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며 얼마나 대단한 성적을 거뒀는지를 알 수 있었다.(사진=이영미) |
지난 1일 오후, 호주 아시안컵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둔 축구대표팀이 성대한 환영식을 거행하고 있을 때 대표팀 선수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홍성찬(17·횡성고·주니어 세계랭킹 3위)은 수많은 환영 인파를 ‘구경’하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대한테니스협회 관계자들 및 가족들과 해후했다.
축구대표팀이 시드니에서 호주와 결승전을 치른 31일, 홍성찬은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주니어 남자단식 결승에서 러시아의 로만 사피울린을 상대로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0-2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국 선수가 그랜드슬램 주니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은 1994년 윔블던 전미라, 1995년 호주오픈 이종민, 2005년 호주오픈 김선용, 2013년 윔블던 정현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홍성찬과 로만 사피울린과의 결승전은 SBS스포츠를 생중계됐지만 워낙 축구 결승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황이라 홍성찬의 준우승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홍성찬은 귀국 후 ‘선물’을 받았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이 2일 발표한 남자 주니어 랭킹이 종전의 9위에서 무려 여섯 계단이나 올라 3위에 오른 것.
홍성찬의 집은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에 위치해 있다. 우천초등학교 출신인 홍성찬의 선배는 이형택. 이형택의 본가와 홍성찬의 집은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우천면에서 이형택과 홍성찬은 ‘자랑스런 우천면의 아들’이었다. 테니스로 이름을 날린 면 출신 선수가 존재하다 보니 우천면에는 수준급 시설을 자랑하는 테니스 코트가 설치돼 있고, 홍성찬의 아버지 홍월표 씨는 우천면 테니스 동호회 회장을 역임 중이다.
횡성 한우로 유명한 우항리 곳곳에는 홍성찬의 호주오픈 주니어대회 준우승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2일 기자가 방문한 홍성찬의 집에선 홍성찬과 함께 할머니, 부모님을 만나 그의 성장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랭킹 1위, 106연승의 신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테니스장을 따라 다녔어요.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테니스나 골프 중 한 가지를 택해 본격적으로 나서면 뒷바라지 해주시겠다고 종종 말씀하셨어요. 그러다 친한 형이 테니스하는 걸 보고 저도 자연스레 테니스 라켓을 잡게 됐죠. 재미있었어요. 코트에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 집에 가기가 싫었을 정도로. 만약 테니스하는 게 지겨웠다면 이전에 그만뒀을 거예요. 단 한 번도 테니스가 싫거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10월 경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 지도를 받은 홍성찬은 이듬해(2006년) 11월 충주회장배 10세부(3학년)에 첫 출전, 8강에 오르며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급기야 2007년 2월 탐라배 10세부(3학년)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10세부에서 단식 7관왕 복식 3관왕 강원도교육감기 3관왕을 차지하는 등 홍성찬은 전 경기 10세부를 석권, 43연승을 내달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9년에는 106경기 무패행진과 국내 15개 대회 연속 우승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아직 깨어지지 않고 있다.
![]() 어린시절, 초등학교 선배이자 테니스의 레전드, 이형택과 함께 사진을 찍은 홍성찬.(사진=홍성찬 제공) |
106경기 연승 행진에 대해 아버지 홍월표 씨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전했다.
“99승을 거두고 100승에 도전했을 때였어요. 안동에서 열린 전국대회였는데 성찬이가 자동차 안의 시가잭을 만지다 엄지손가락을 데이는 사고가 발생했었죠.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의사는 손을 쓰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성찬이는 붕대를 감은 손으로 라켓을 잡고 대회 출전을 강행하더니 결국은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테니스연맹 관계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어린 선수의 정신력이 대단하다’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어요. 사실 저도 말리고 싶었거든요. 상처 부위가 악화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런데 성찬이는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그때 경기 출전을 강행했던 게 106연승까지 이어졌다고 봐요. 제 아들이지만, 정신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버지 얘기를 듣고 있던 홍성찬이 말을 이었다.
“연승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냥 지는 게 싫었어요. 손가락이 아프다고 경기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싫어서 코트에 들어간 거죠.”
오렌지보울 우승으로 미국 비행기 안에서 환영 받아
2009년 12월, 홍성찬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48회 주니어 오렌지보울 테니스 세계대회’에 출전, 미국의 코즐로프를 2-0으로 꺽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과 함께 그는 에디허 단식 준우승, 복식 우승, 혼합복식 우승, 프린스컵 우승 등 세계 최고의 주니어 대회에서 4관왕을 달성했다. 이는 역대 한국 선수 가운데 최고의 성적이다.
당시 4관왕을 품에 안고 아버지와 함께 귀국길에 오른 홍성찬은 기내에서 뜻밖의 축하를 받게 된다. 기내에 배치된 미국 테니스 잡지에 홍성찬이 오렌지보울 우승 기사가 사진과 함께 소개됐고, 이것을 발견한 아버지가 자랑삼아 승무원에게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 내 아들이다’라며 옆에 있는 홍성찬을 가리키자 승무원이 깜짝 놀라면서 기장에게 이 내용을 전했다는 것. 그 후 기장은 안내방송을 통해 ‘오렌지보울 우승 소년이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다’라는 내용을 전했고, 200여명의 승객들은 ‘홍 부자’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사인 요청까지 해왔다고 한다.
오렌지보울 우승은 홍성찬에게 미국에서 테니스를 배우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옥타곤의 후원을 받으며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에버트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찬이랑 같이 가서 기숙사 시설을 둘러 보고 며칠 있다가 혼자 귀국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그곳에 놓고 오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한국 오니까 그 새 성찬이가 20번이나 넘게 전화를 했다는 거예요. 아빠 오면 다시 자기를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면서. 운동하면서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는 아이가 미국에 혼자 남으니까 무섭고 두려웠던 거죠.”
아버지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고 한다. 귀국 후 아들과의 통화에서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울음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단다. 어쩔 수 없이 어르고 달래면서 일주일을 보낸 이후에는 더 이상 아들한테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
이번에는 홍성찬의 이야기다.
“그때는 영어도 할 줄 몰라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질 못했어요. 훈련 끝나면 수업 받는 스케줄이 있는데, 영어 못하는 저는 그 수업에서 제외됐어요. 공부하는데 방해되니까 아예 방에서 나오지 말고 있으라 하더라고요. 휴대폰도 없고, TV, 노트북도 없는 빈 방에서 벽 보고 앉아 혼자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곳 생활에 적응이 됐어요. 말은 못해도 대충 눈치로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이해하면서 친분을 쌓기 시작했죠. 그 후론 테니스 배우는 재미로 향수병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 미국 애버트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은 홍성찬에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맛보게 했다.(사진=이영미) |
애버트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쌓은 홍성찬은 2011년, 또 다시 한국 테니스를 놀라게 했다. 8월 체코에서 열린 ITF월드주니어 결승에서 한국이 일본을 종합전적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맹활약을 펼친 것. 한국 테니스가 ITF가 주관하는 연령대별 국가대항전에서 우승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더욱이 홍성찬은 2011년 12월, 오렌지보울과 나이키국제주니어대회 14세부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두 대회 우승 직후 홍성찬의 아버지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옥타곤과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성찬이가 애버트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는 것은 장학금 형식으로 지원되는 줄 알았어요. 즉 옥타곤에서 성찬이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찬이의 훈련비를 옥타곤에 다 갚아야 하는 조건이었더라고요. 영어로 된 계약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인을 한 우리가 잘못이었죠. 결국 성찬이가 나이키배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한 돈은 우린 만져보지도 못했고, 옥타곤으로 들어갔습니다. 거의 다 갚았지만 아직도 갚아야 할 돈이 조금 남았어요. 만약 성찬이가 나이키배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더라면 그 돈은 모두 제가 떠안았어야 했을 겁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만약 미국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에서 계약 후 훈련을 지원하겠다고 나선다면 통역을 구해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 후 사인해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홍성찬도 이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아버지가 제게 그런 내용을 알려줬더라면 미국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나왔을 겁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그런 계약 조건이 있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그 일로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제게는 내색도 하지 않으셨어요.”
슬럼프 탈출의 계기, 덕 맥커디 코치와의 만남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홍성찬은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무리한 대회 출전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쳤고, 크고 작은 부상이 돌출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2012년 대한테니스협회에서 주니어 육성팀을 꾸려 세계적인 테니스 육성 전문가 덕 맥커디를 사령탑으로 초빙한 일은 홍성찬에게 또 다른 기회로 다가왔다. 육성팀에 들어간 홍성찬은 부상 방지 프로그램과 체계적인 훈련을 소화하면서 다시 일어섰고, 2013년 한국 주니어 대표팀이 사상 첫 데이비스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앞장섰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홍성찬은 유럽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국제대회 나갈수록 제 부족함이 눈에 띄어요. 외국 선수들은 워낙 성장이 빠른 편이라 같은 나이의 선수가 시합을 해도 마치 주니어랑 성인 선수가 대결하는 모습이에요. 어떤 선수는 키가 2미터가 넘기도 하고요. 외국 선수들은 10대에 성장을 마치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은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넘어가는 게 제일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홍성찬의 설명이다. 그는 호주오픈주니어대회에서 준우승에 오른 데에는 올해 초 열렸던 로이 양 트라랄곤주니어인터내셔널(1그룹)에서 우승을 차지한 게 호주오픈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한다.
“로이양 트라랄곤주니어인터내셔널대회는 호주오픈에 참가하는 선수들 대부분이 전초전 성격으로 나오는 대회에요. 거기서 잘하는 선수들과 붙어봤던 게 호주오픈에 경험으로 작용했습니다. 호주오픈주니어대회 결승전은 이전 시합과 달리 호주오픈대회가 열리는 메인 센터 로드레이버아레나에서 펼쳐졌어요. 코트 시설과 분위기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이 코트에 섰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결승전 상대였던 로만 사피울린은 시니어 무대를 겸하고 있는 선수입니다. 우승을 못해 아쉬운 것보다는 오히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 호주오픈 주니어대회 결승전에 맞붙은 러시아 로만 사피울린과 시상대에 오른 홍성찬.ⓒ gettyimages/멀티비츠 |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스폰서가 시급해
잘 알려졌다시피 홍성찬은 아직 스폰서를 찾지 못했다.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정현은 삼성증권이, 한 살 어린 이덕희는 KDB산업은행과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홍성찬만 스폰서가 없다. 스폰서가 없다 보니 전담 코치도 둘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호주오픈주니어대회에도 전담 코치 없이 출전했고, 8강전, 4강전으로 올라갔을 때는 히팅 파트너가 없어 관전을 위해 동행했던 테니스협회 관계자들이 공을 넘겨줬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전해졌다.
“시합하면서 잘 안 풀릴 때는 코치랑 대화를 나누며 파이팅을 해야 하는데, 전 그럴 수가 없었어요.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상대 선수는 계속 코치랑 대화를 나누며 작전을 짜고 있지만, 전담 코치가 없다 보니 모든 걸 혼자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움이요? 물론 있죠. (이)덕희는 함께 다니는 스태프가 5명이나 돼요. (정)현이 형은 운동 환경이 좋으니까 많은 시합에 출전하고 있고요. 솔직히 부러워요. 그들의 환경이. 그래도 호주오픈에서는 대회 트레이너가 상주해 있어 필요할 때는 찾아가서 도움을 받았어요.”
아버지 홍월표 씨가 가장 속상해 하는 부분이다.
“성찬이가 해외 투어를 하면서 혼자 고생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쓰립니다. 그래도 주위에서 도와주시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스폰서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에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할 따름입니다.”
농협에서 25년을 근무해온 아버지 홍 씨는 아들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은 비용이 지출돼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경제적인 문제를 짊어지기엔 부담이 뒤따른다. 아들 홍성찬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는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신 줄 몰랐어요. 제가 걱정할까봐 어려운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신 아버지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효도하는 것은 테니스로 성공해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제 이름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고, 보완해야 할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주니어 무대만이 아닌 시니어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홍성찬이 더 높은 무대를 향해 도약하려면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해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홍성찬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장과 고향 선배인 이형택도 홍성찬을 돕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174cm의 작은 키에 빠른 발과 스트로크를 지닌 홍성찬은 테니스를 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가 돈 걱정 없이 테니스만 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정말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강원도 횡성=이영미 기자>
![]() 홍성찬을 영원히 응원하는 가족들. 누구보다 아버지 홍월표 씨의 헌신과 희생은 홍성찬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사진=이영미) |
홍성찬 주요 수상 이력
2009년 전국대회 전관왕(106연승)
2009년 세계 프린스컵 12세부 단식 우승, 세계 에디허컵 12세부 복식, 혼복 우승, 세계 오렌지보울 12세부 단식 우승(세계대회 4관왕)
2011년 세계 나이키주니어대회 14세부 단식 우승
2011년 세계 오렌지보울대회 14세부 단식 우승
2012년 서귀포 아시아/오세아니아 국제대회 단식 우승
2012년 ITF(국제테니스연맹) 파나마보울 국제주니어(U-18) 단식 우승
2013년 아시아/오세아니아 14세부 단체전 우승
2013년 캐나다 월드테니스 18세이하 복식 우승
2015년 호주 국제주니어대회 단식 우승
2015 호주오픈 주니어대회 단식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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