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 은퇴' 뉴질랜드戰은 러시아를 향한 여정의 시작
'차두리 은퇴' 뉴질랜드戰은 러시아를 향한 여정의 시작
[뷰티풀게임=서형욱] 뉴질랜드전이 열리는 날이다. 이 경기는 지난 1월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연착륙한 슈틸리케호가 오는 6월 시작될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2차)으로 가기 위한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브라질 월드컵의 상흔을 차두리의 분전으로 지워낸 대표팀과 슈틸리케 감독은, 그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다음 대회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 슈틸리케 감독이 뉴질랜드전을 앞둔 훈련 도중 차두리에게 조끼를 건네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레전드'라 명한 차두리는 뉴질랜드전에서 국가대표 선수로부터 은퇴한다. (사진=연합뉴스) |
우즈벡전의 소득 | 구자철의 부활과 이재성의 등장
슈틸리케 감독은 27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전반 30분까지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에만족감을 표한 바 있다. 경기 하루 전날 가진 인터뷰에서 “우즈벡전에서 전반 30분까지의 경기력을 후반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반 30분은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이 눈두덩을 다치는 부상으로 교체아웃된 사이 실점을 허용한 바로 그 시점이다. 최전방 공격수의 이탈과 실점이라는 두 가지 변수가 동시에 발생한 이후 대표팀은 이전까지 보여준 경기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대표팀은 후반전 들어 단 하나의 코너킥도 얻어내지 못하는 등 공격적인 면에서 특히 부진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실점이 상대의 기를 살려준 측면도 컸지만, 이정협이 빠진 것이 중요한 손실이었다. 이번 소집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스트라이커 자리에 이정협과 지동원 두 명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이날 이정협이 빠진 자리에 지동원 대신 기성용을 기용했다. 두 명의 스트라이커에게 두 경기 선발을 나눠 맡기려는 당초의 구상을 바꾸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기성용이 투입된 뒤 대표팀 최전방 공격은 구자철이 맡았다. 이정협이 부상으로 빠지기 전까지 2선에서의 활발한 패스와 스피디한 전개로 인상적인 공격력을 펼치던 대표팀의 상승세는 이후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 우즈벡전에서 눈두덩이를 다쳐 교체아웃되는 이정협 (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공격진에서의 가장 큰 발견은 이재성의 두각이었다. 지난 시즌 전북 소속으로 K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친 이재성은 A매치 데뷔전인 이날 두드러지는 움직임으로 각계의 찬사를 받았다. 부상으로 소집되지 않은 이청용의 등번호인 17번을 등에 달고 뛴 이재성은, 마치 이청용을 연상케하는 유연한 움직임과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손흥민-구자철-기성용 등 수 년 동안 대표팀 공격 전개의 축으로 활동해 온 선수들과 처음 발을 맞추는 경기에서 빠르게 팀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 기대감을 높였다. 뉴질랜드전에서도 호평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수비 테스트는 계속된다
수비진 구성은 여전한 숙제다. 뉴질랜드전은 그 숙제를 풀기 위한 또 하나의 테스트 무대가 될 것이다. 우즈벡전에서 새롭게 조합된 포백으로 주목을 받았던 수비라인은 뉴질랜드전에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은퇴 경기에 나설 차두리의 선발 기용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센터백 조합 역시 우즈벡전(곽태휘-김기희)과는 다른 선발 구성이 유력하다. 우즈벡전에 휴식을 취한 김영권과 김주영의 선발 출격이 예상된다. 190cm가 넘는 장신 선수들이 여럿인 뉴질랜드를 상대로 어떤 수비를 펼칠 것인지 기대된다. 호주와 이란의 벽을 만나야 하는 월드컵 지역예선을 치르게 될 우리 대표팀에게 뉴질랜드의 우월한 피지컬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김진수가 부상으로 소집에 참여하지 못한 왼쪽 풀백 자리에는 윤석영과 박주호가 경합한다. 2011년 1월 아시안컵을 끝으로 이영표가 은퇴한 뒤, 이 자리는 우리 대표팀의 고질적인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아시안컵을 통해 김진수가 자리를 잡고, EPL에서 윤석영이 활약한데다, 여러 포지션을 두루 책임질 수 있는 박주호마저 건재해, 왼쪽 풀백은 그 어느 때보다 인재가 풍성한 자리가 됐다. 그런 점에서 이 경기를 통해 차두리가 은퇴하는 오른쪽 풀백은 큰 관심을 끈다. 차두리는 뉴질랜드전에 선발 출격한 뒤 하프타임을 앞두고 교체아웃될 예정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레전드”인 차두리가 전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행복한 마무리를 하게끔 시나리오를 써둔 상태. 이러한 이벤트는, 다른 모든 선수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차두리가 떠난 오른쪽 풀백 자리는 (차두리가 대표팀에 복귀해 뛴) 지난 8개월의 시간이 있기 전으로 고민의 시계를 되돌린다. 우즈벡전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정동호와 기존의 김창수는 물론, K리그에서 활약 중인 여러 선수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골키퍼 자리에는 김진현이 돌아온다. 우즈벡전을 김승규에게 잠시 내줬던 김진현은 아시안컵을 통해 정성룡을 밀어내고 ‘No.1’ 골키퍼 자리를 굳건히 했다. 하지만 소속팀(세레소 오사카)이 J리그 2부리그로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리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그에게 불안요소다. 팀이 일본 2부 리그에 있을지언정, 자신의 기량과 자신감은 여전하다는 것을 뉴질랜드전에서 보여줘야 한다. 특히 높이있는 축구를 구사할 뉴질랜드를 상대로 강력한 수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 우즈벡전에서 돋보였던 대표팀 새내기 이재성 (사진=연합뉴스) |
수비진 앞에 설 두 명의 미드필드 자리는 아시안컵을 통해 어느 정도 기틀이 잡혔다. ‘붙박이’ 기성용과 ‘살림꾼’ 박주호의 조합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합격점을 받았다.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이 둘을 넘어설 중앙 미드필더 콤비를 찾기는 쉽지 않으리란 평까지 가능케 할만큼 안정적인 구성이라 해도 좋다. 우즈벡전에서 교체 출격했던 둘이 다시금 굳건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2018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우리 중원은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다. K리그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기대를 모았던 김은선(수원)은 컨디션 문제로 후반전 출전이 예상된다. 우즈벡전에서 좀 더 깊은 곳에 위치했던 김보경의 재출격도 고려해 볼만한 카드다.
공격 2선은 주전 경쟁이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손흥민과 구자철, 이청용이 오랫동안 주전으로서 활약해 온 자리로, 이제까지 경쟁자로 지목됐던 선수들이 실전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기존 주전 선수들의 강세와는 별개로, 도전자들의 기세가 만만찮다. 앞서 언급한 이재성의 도약을 필두로, 기존의 남태희와 김보경, 한교원이 경험을 더 쌓고 있어 뉴질랜드전을 통해 호시탐탐 기회를 다시 노린다. 한때 ‘슈틸리케의 황태자’라는 별칭까지 (잠깐) 얻기도 했던 남태희에게는 뉴질랜드전이 특히 중요하다. 한교원이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주문을 충실히 소화하며 전술적 가치를 인정받은데다 이재성이 우즈벡전 활약으로 급부상했다. ‘훈련장 메시’라는 호평 아닌 호평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뉴질랜드전이 결정적인 기회다. 이청용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남태희는 자신에게 주어질 얼마간의 시간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 지동원의 선발 원톱 출격이 예정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아무래도 뉴질랜드전에서 가장 주목받을 선수는 지동원일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소집 직후부터 ‘뉴질랜드전 선발은 지동원‘이라는 언질을 줬다. 이정협이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와중에도, 지동원을 온전히 지켜볼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우즈벡전에 지동원을 아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간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윙포워드로도 많은 경기를 뛴 지동원과 면담 끝에 “(지동원이) 최전방 공격수로 뛰고 싶어한다”며 원톱 출격을 결정했다.
지동원은 지난해 여름 독일 도르트문트에 입단한 뒤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출전 기회는 오지 않았고, 2군으로 내려가 뛴 3부 리가 경기에서는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게다가 부상까지 겹쳐 온전히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제한됐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한 것은 본인에게나 대표팀에게나 긍정적인 결단이었다. 아우크스부르크 이적 뒤 지동원은 많은 기회를 얻었다. 경쟁 상대인 기존의 주전 공격수 묄더스와 마타우쉬가 줄부상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 두 해에 걸쳐 지동원을 두 차례나 임대로 데려와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바인지를 감독의 배려 덕분에 지동원은 후반기 팀이 치른 리가 9경기에 전 경기 출전했다.
이 과정에서 몸 상태는 많이 끌어올렸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동원은 최근 9경기 무득점을 비롯해 2014년 1월 이후 그 어떤 공식 경기에서도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 뉴질랜드전은 그런 지동원에게 절체절명의 기회가 될 것이다. 뉴질랜드전이 끝나고 6월 월드컵 예선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표팀 합류를 노리는 기존 스트라이커들의 복귀가 예정되어 있다. 베테랑 이동국과 부상에서 돌아온 김신욱의 존재는 새롭게 떠오른 이정협과 더불에 지동원에게 더 많은 기회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경고 팻말이나 마찬가지다. 무조건 골이 필요한 경기다.
낯선 상대, 젊고 건장한 뉴질랜드
이처럼 하나같이 귀한 우리 선수들이 맞설 상대인 뉴질랜드는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우리가 뒤질 것이 없는 약체다. 슈틸리케 감독은 뉴질랜드가 약팀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FIFA랭킹은 134위에 불과하며 2014년 A매치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이런 팀에 약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팀보다 강할 게 없는 팀이 된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만나도 경계할 것이 있는 법이고, 또 상대를 향한 우월감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홈 경기로 만날 뉴질랜드는 우리가 반드시 1승을 거둬야 하는 팀이다.
이번에 내한한 뉴질랜드 선수들의 A매치 총합은 차두리 혼자 이제껏 뛴 A매치 수(75경기)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다. 한국 대표팀 막내인 손흥민(1992년)보다 어린 선수들이 (전체 21명 중) 12명이나 되는 새내기 팀이다. 뉴질랜드가 A매치 데이에 치르는 평가전치고는 드물게 경기일 8일 전에 입국해 긴 시간 훈련한 것은 이런 여건이 반영된 것이다. 뉴질랜드가 최근 태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했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분석은 의미있지만, 그랬다한들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그나마 그때 출전한 베테랑 선수들 여럿이 이번 소집에서 제외됐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 뉴질랜드 대표팀의 공격을 책임질 크리스 우드. 레스터 시티 소속으로 올 시즌 EPL 개막전에 출격해 에버턴 상대로 골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 Did you know? |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은 6월 11일에 시작된다. 40개국이 8개조로 나뉘어 진행할 2차예선 조 편성은 4월 14일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이번 월드컵 예선의 특징은 2019년 아시안컵 예선을 겸한다는 점이다. 2019년부터 아시안컵은 기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참가팀의 수를 늘린다. 2차예선 각조 1위(8개팀)와 2위 중 상위 성적 4개팀, 이렇게 총 12개팀은 아시안컵 본선 직행과 월드컵 3차예선 진출의 혜택을 얻는다. 3차예선은 12개팀이 2개조로 나뉘어 홈 앤드 어웨이로 진행된다.
※ 차두리 | 뉴질랜드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는 차두리의 A매치 출전 경기 수는 75경기다. 뉴질랜드전을 통해 76경기째에서 은퇴한다. 차두리는 대표팀에서 공격수로 38경기, 수비수로 37경기를 뛰었다. 뉴질랜드전을 통해 공수 균형을 이룬채 은퇴하게 된다. 차두리의 A매치 득점은 4골이다. 2002년 4월 대구에서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A매치 데뷔골을 넣었고, 2004년 7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쿠웨이트를 상대로 A매치 4호골을 넣었다. 차두리의 A매치 데뷔일은 2001년 11월 8일 세네갈전이다.
■ 대한민국 vs 뉴질랜드 | 2015년 3월 31일 저녁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 MBC생중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