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볼 논란', 황재균은 왜 한화의 '집중 표적'이 됐나
'빈볼 논란', 황재균은 왜 한화의 '집중 표적'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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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이 5회 한화 이동걸의 공에 맞은 뒤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뉴스1 |
현직 KBO리그 감독 A씨의 말이다.
"요즘은 그렇게 '더티(Dirty)'한 야구를 하다간 욕먹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감독이 직접 지시를 해 상대 팀 선수를 맞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만약 그런 상황(빈볼 사태)이 벌어졌을 경우, 빈볼을 던진 투수가 그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감독들은 이제 그런 야구 안 합니다. 핵심은 누구의 지시를 받았건, 본인이 스스로 던졌건, 이제 그 후폭풍은 공을 던진 투수가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지난 시즌 KBO리그 시즌이 끝난 뒤 한 현직 사령탑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런 야구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게 아닌가 보다. '옛날 야구'의 '구태'가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부활한 것일까.
12일 오후 5시 부산 사직구장. 롯데와 한화가 맞붙었다. 구도 부산이 들썩였다. 올 시즌 두 번째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로 치러진 경기였다. 1만2723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경기 내내 파도타기 응원이 이어졌다. 그런데 아름다워야 할 일요일 '봄밤'이 빈볼과 벤치클리어링 사태로 얼룩졌다.
이날 롯데는 1회에만 타자 일순하며 7점, 2회에는 4점을 추가하며 사실상 초반에 승부를 결정지었다. 급기야 5회에는 4점을 추가하며 15-1까지 달아났다. 이어진 5회말. 앞서 안타-안타-2루타-몸에 맞는 볼(초구)을 기록한 황재균이 타석에 들어섰다. 한화 투수는 세 번째 마운드에 오른 이동걸.
초구가 황재균의 몸 쪽 깊숙이 들어왔다. 황재균이 엉덩이를 뒤로 빼며 가까스로 피했다. 제 2구째. 이번에도 몸 쪽 볼. 황재균의 팔꿈치 쪽으로 공이 왔다. 뭔가 낌새를 느낀 황재균은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동걸의 볼도 살며시 올라간다. 제 3구째. 이동걸이 뿌린 속구가 황재균의 허리 쪽을 강타했다. 2타석 연속 몸에 맞는 볼이었다.
황재균이 배트를 땅에 던진 뒤 마운드로 향했다. 이동걸도 황재균 쪽으로 다가왔다. 순간, 양 팀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올 시즌 첫 벤치클리어링이었다. 롯데는 최준석과 송승준, 임재철이 앞장섰고, 한화는 배영수와 김태균 등이 전면에 나섰다. 심지어 롯데 선발 린드블럼도 가세했다. 다행히 더 큰 불상사는 없었다. 얼마 시간이 지난 뒤 사태가 진정됐다. 투수 이동걸이 주심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는 선에서 이 사태는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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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이 벤치클리어링과 빈볼 사태로 얼룩졌다. /사진=뉴스1 |
모든 빈볼은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 단, 정황을 놓고 추측할 뿐이다. 통상적으로 타자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투수의 손을 보면 고의인지 아닌지를 직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왜 1번 타자 황재균이었을까.
정황상, 황재균을 향한 화살은 지난 10일 1차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롯데가 8-2로 앞선 6회말. 선두타자 황재균이 2루타를 친 뒤 2사 후 3루 도루에 성공했다. 그리고 롯데의 끝내기 승리 후 '양 팀의 주장'인 최준석과 김태균이 이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를 이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설은 역시 황재균의 이날 1회 도루가 한화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롯데가 타자 일순한 1회초. 7-0으로 앞선 가운데 황재균은 김문호 타석 때 3구째 도루를 감행했다. 이때 눈길을 끄는 것은 한화 수비진이 도루에 대한 어떤 방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황재균이 7점차에서 설마 뛰겠냐는 계산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황재균은 이후 2회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한화 마운드를 두들겼다. 그리고 4회 김민우로부터 초구에 몸에 맞는 볼로 출루했다. 이어진 5회. 롯데는 2사 만루 기회에서 김민하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한 점을 뽑은 뒤 후속 오승택이 싹쓸이 좌중간 적시 2루타를 쳤다. 점수는 15-1. 승부가 완벽하게 기운 가운데, 황재균이 들어섰고 빈볼을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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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황재균이 이동걸의 공에 맞은 뒤 1루를 향해 걸어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
만약 이 모든 가설이 맞다고 가정할 때, 1회 7-0 상황에서 황재균의 주루 플레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것이 결코 빈볼을 얻어맞을 만한 비겁한 플레이였을까. 만약 1회 롯데가 10점 이상 점수를 낸 상태에서(물론 이 역시 정답은 없다) 그랬다면 한화의 대응이 이해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7점차. 그리고 이제 막 1회였다. 매 이닝 1점씩만 따라붙어도 9점을 뽑아 역전이 가능한데, 롯데가 과연 상대 팀을 향한 예의를 차리는 게 더 중요했을까.
이번 사태의 경우, 양 팀이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 벌어진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요즘은 '타고투저'의 시대다. 현직 감독들은 "요즘 믿을 만한 불펜을 가진 팀이 과연 몇 팀이나 되겠냐"고 입을 모아 말한다. "경기 후반 3,4점 뽑는 것은 우습다", "'어' 하다 보면 경기가 순식간에 뒤집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모습이 최근 몇 년 간 KBO리그의 현주소다.
다행히도 롯데는 보복구를 던지지 않으면서 사직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깨끗한 매너를 선보였다. 물론,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경기 후 롯데 이종운 감독은 "남의 팀에 피해를 주면, 그 팀에도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황)재균이가 무슨 잘못인가. 열심히 하는 선수일 뿐이다. 우리는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똑같이 할 가치가 없어 참았다. 앞으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김태균을 왜 뺐나. 오늘 경기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인가. 한화전은 앞으로 10경기나 넘게 남아 있다. 앞으로 우리 팀 선수를 가해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야구로 승부하자"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반드시 이런 상황을 기억해 뒀다가 추후 경기에서 보복을 하곤 한다. 그 보복은 주로 상대 팀의 4번 타자를 맞히는 일이다. 한화와 롯데의 다음 맞대결은 오는 5월 1일부터 3일까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펼쳐진다. 과연 롯데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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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택의 내야 땅볼 때 한화 2루수 이시찬이 롯데 2루 주자 김대우에게 태그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뉴스1 |